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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영화 하이재킹> 하이재킹 의미, 실화 사건, 제작비, 손익분기점, 관람 후기

by 스윗롱롱 2024. 6.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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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Hijacking 하이재킹의 뜻, 의미

영화 하이재킹 포스터

 
하이재킹이란 운항 중인 항공기나 배 따위의 탈 것을 납치하거나 통신장비나 무선 전파를 도청하는 행위입니다. 주로 항공기 납치범과 그 행위를 말하며 스카이재킹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 '하이재킹'은 '하이잭(Hi, Jack)'이라는 말에서 유래됐는데, 미국 서부시대의 열차 강도들이 말을 타고 마차를 추격해 마부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했던 'Hi, Jack'으로  살벌한 인사말이었습니다. 기관사의 이름을 알 리가 없으니 반어적인 의미로 '안녕하신가 친구?'라고 인사하며 강도짓을 했다고 하죠.
 
하이재킹이 발생되면 조종사들의 제1 행동 준칙은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납치범이 요구하는 대로 비행을 계속하는 것'이지만, 9.11 테러 이후에는 '일부가 희생되더라도 지체 없이 가장 가까운 공항에 착륙해 당국의 조치를 기다리는' 방향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1958년 2월 16일에 터진 창랑호 납북사건,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 등 미국보다 먼저 하이재킹을 겪어 세계 최초로 가장 먼저 조종석 보안 규정을 엄격하게 규정했습니다. 항공기가 납치되면 조종사는 비밀리에 정해진 신호로 비상사태임을 알리게 되고, 납치된 비행기는 식별코드 7500이 붙어 어느 나라든 비상착륙이 허용됩니다. 하지만 이 마저도 9.11 테러 이후 여러 나라에서 거부되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은 대한항공 YS-11기 납북 사건을 계기로 경찰관을 투입을 시작으로 항공사 소속 청원경찰을 동승시켰으며, 대한항공 F27 납북 사건 때는 동승한 항공보안관의 활약으로 납북 사건이 미수에 그쳤습니다.
 

2. 영화 하이재킹 실화>1958년 2월 16일 창랑호 납북사건

1958년 납치된 기체 창랑호 더글러스 DC-3

https://www.youtube.com/watch?v=BwLQsKkGxC4

 
1958년 2월 16일, 창랑호는 승객 31명과 기장/부기장 포함 미국인 승무원 3명 총 34명을 태우고 오전 11시 30분 부산 수영 비행장을 이륙했습니다. 서울 여의도 비행장을 가던 12시 40분경 평택 상공에서 남파공작원 5명에게 공중 납치되었고,납치범들은 승객 중 군인 2명을 둔기로 쳐 실신시키고 총기로 조종사를 위협하여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의 평양국제비행장에 강제로 착륙시켰습니다.
 
탑승자 중에는 미국인 승무원 3명 외에도 외국인 승객 3명과 한국 고위 인사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건 발생 다음날, 북한은 대한국민항공사가 자신의 의지로 군사분계선을 넘은 '의거월북'으로 언론기관을 통해 발표했습니다.
 
당시 한국의 민항기를 납치한 이유는 당시 북한에 중국 수상이었던 저우언라이가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고, KNA기가 스스로 월북한 것처럼 꾸며 '북한의 체제 우월성을 알리기 위해서'였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사건 발생 18일 만인 1958년 3월 6일, 범행 당사자는 모두 월북해 버렸고 승객과 승무원 26명만이 판문점을 통해 송환되었으며 기체는 반환되지 않았습니다. 청랑호의 기체를 반환받지 못한 KNA는 운행상의 타격을 받아 적자를 해소하지 못했고, 1961년 6월 KNA대표가 한강에 투신자살 하며 다음 해 11월 폐업하였습니다.
 

3. 영화 하이재킹 실화> 1969년 12월 11일 대한항공 YS-11기 납북사건

대한항공 YS-11

 
창랑호 납북사건 11년 뒤인 1969년 12월 11일, 승무원 4명과 승객 47명 총 51명을 태운 YS-11기는 강릉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하던 중 이륙한 지 약 14분 만에 승객으로 위장하고 맨 앞 좌석에 앉아 있던 고정간첩 조창희(육군 준장 계급장을 단 제복을 입고 보안 검색을 받지 않은 채 VIP 대우를 받으며 탑승)에 의해 공중납 되어 북한의 선덕비행장에 강제 착륙하게 됩니다.
 
사건 발생 후인 12월 13일 새벽 평양방송은 KAL YS-11기가 조종사 2명의 자진 입북으로 북한에 도착하였다고 발표합니다. 북한방송과 달리 치안국은 사건 직후인 12월 15일 강릉에서 병원을 운영하던 서울대 의대 출신 채헌덕을 범인으로 지목했습니다. 그가 오랫동안 준비한 치밀한 계획으로 공작원 조창희와 부조종사 최석만을 포섭해 여객기를 납부시켰다고 발표합니다. 제대로 된 수사를 하지 않고 북에 가족이 있는 공군군의관 출신 채 씨를 주모자로 몰고 다른 2명의 군출신자를 엮어 짜 맞춰 확증 없이 추리에 의한 추정을 발표한 것이었죠.
 
북한의 UN개입 거부, 국제 적십자위원회를 통한 협상 불발, 대한민국 각지의 북한 규탄 시위, 세계 12개국 주요 항공사의 규탄 등.. 마침내 북한은 1970년 2월 5일, 비행기 납북 후 공작원을 제외한 50명 중 승객 39명 만 66일 만에 귀환조치하기로 하고, 2월 14일 판문점을 통해 39명만 송환받습니다. 정부는 전원 송환을 요구하며 송환 협상을 벌였지만 기장, 부기장, 승무원 2명, 지식인 승객 7명의 11명은 돌아오지 못하고 북한에 억류됐습니다.
 

KAL YS-11기 납북사건 미송환자 신원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2/11/2019121100301.html

KAL기 납북 50년… 끝내 못 돌아온 11명에 눈감은 정부

KAL기 납북 50년 끝내 못 돌아온 11명에 눈감은 정부 피해자 가족들 수십년간 정부에 생사라도 알려달라 사정했지만 모른다 말만 반복 이젠 지쳤다 피해자 부모들 다수는 세상 떠나 당시 23세던 막

www.chosun.com

 

4. 영화 하이재킹 실화> 1971년 대한항공 F27기 납북 미수 사건

 
KAL기 납북 미수 사건은  22년 9월 22일 '꼬꼬무(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46회'에 방영된 바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dAwznnueiHQ

꼬꼬무 46회 F27 납북 미수사건 예고편

 
 
대한항공 F27기 납치범의 이름은 김상태로 당시 나이는 22세 무직이었습니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 출생으로, 전쟁 전 북한 땅이었으나 종전 후 남한 땅이 되면서 빨갱이 집안이라는 오명의 삶을 살게 됩니다. 당시 아버지가 6.25 전쟁 인민군으로 참전했으나 미국의 폭격으로 사망, 큰 형은 한국 전쟁 직전에 월북했습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명석하여 중학교 때 전교 1등도 했으나 빨갱이 연좌제의 사회적 벽에 부딪혀 2학년 때 자퇴를 하고, 억울하게 감옥살이를 하고 나와 돌아간 집에는 굶어 죽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1971년 1월 대한항공 KAL기 납북 미수 사건

 
김상태는 사살되었기 때문에 왜 여객기를 납치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납북에 성공한 공작원들이 북한에서 엄청난 대접을 받는다는 기사를 보고 사건을 일으켰을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그는 입에는 칼을 물고 양손에 수류탄처럼 생긴 사제 폭탄을 든 채 "기수를 북으로 돌리라"고 했고, 기장은 납치범에게는 북쪽으로 가겠다고 안심시키며 실제로 기수는 동쪽으로 돌렸습니다. 기장은 비행기가 납치된 사실을 몰래 무전으로 보냈고, 휴전선 마지막 활주로에 위장 착륙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납치범이 북한이 이남이 아님을 알아챘고 극도로 흥분함에 따라 기장은 기내방송으로 "곧 북으로 넘어가니 신분증과 중요서류를 찢어달라"라고 안내 방송을 합니다. 기장은 남한의 전투기를 북한의 전투기라고 속이며 이미 휴전선을 넘었다고 했습니다. 당시 여객기에 반드시 탑승해야 했던 항공 보안관은 납치범이 전투기에 집중하는 틈을 타 납치범을 총격으로 사살합니다.
하지만 김상태가 만든 사재 폭탄의 안전핀이 뽑힌 뒤였고, 폭탄이 굴러가며 연기가 피어날 때 조종석 뒤편에 타고 있던 수습 조종사 전명세씨가 몸으로 폭탄을 덮었고, 그로 인해 중상을 입습니다. 기장도 파편이 눈까지 튀어 왼쪽 눈의 시력확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휴전선에서 불과 10km 떨어진 초도리 해변에 비상착륙에 성공합니다.

1961년 1월 K27 납북 미수 사건 당시 비상착륙에 성공한 비행기

 
경상 12명, 중상 5명의 부상자들은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고, 전명세 수습 조종사는 급히 헬기를 통해 서울의 병원으로 옮겨지는 순간에도 "승객들이 위험하다. 폭탄, 폭탄"을 외치며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하이재킹 영화 실화 전명세 조종사, 이강흔 기

 
 
보안 검색도 제대로 하지 않은 관계자들은 징계를 받았고, 목숨을 바쳐 승객들을 구한 승무원들에게는 보국 훈장이 수여되었으며, 수습 조종사 전명세 씨는 기장으로 추서 되었습니다. 눈을 다쳐 오랜시간 투병을 하다 끝내 회복한 이강흔 기장은 비행기에 오르며 "앞으로 나의 비행은 전명세 기장과 나 두 사람의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5. 영화 하이재킹 줄거리, 제작비, 손익분기점

 

영화 하이재킹 하정우 여진구 성동일 채수

 
영화 하이재킹은 24년 6월 21일 개봏한 상영시간 100분짜리 영화로, 69년 12월 11일 KAL YS-11기 납북 사건과 1971년 1월 23일 대한항공 F27일 납북 미수 사건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하이재킹 영화는 해당 실화를 바탕으로 1971년 겨울, 김포행 비행에 나선 속초공항 여객기 부기장 태인(하정우)기장 규식(성동일). 그리고 승무원 옥순(채수빈)이 여객기를 통째로 납치해 이북으로 가려는 납치범 용대(여진구)공중에서 벌이는 하이재킹 상황을 다룬 영화입니다.
 

영화 하이재킹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하이재킹 영화의 제작비는 130억~ 140억으로, 그로 인한 손익분기점은 관객 수 230만 명~ 300만이라고 합니다.

영화 하이재킹 여진구 하정우

 
오랜만의 영화데이트로 예랑이가 예매했기때문에 저는 사전 정보 없이 관람했는데요! 오픈 초입의 전투기 조종신만 보고 톰 크루즈 주연 영화 '탑건' 같은 영화인가 생각했답니다!
 
하지만 하이재킹 영화의 간략한 줄거리는 이와는 다른 내용이었는데요!
 
전투기 조종사 출신 태인은 하이재킹 상황의 민간 항공기를 공격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나 명령을 거부하고 비행기를 그대로 보낸 사건으로 강제 전역을 당하고, 민간 항공사에서 부기장으로 근무하게 됩니다. 기장 규식, 승무원 옥순과 속초에서 서울로 향하는 비행기에는 목적지가 다른 여객기 납치범 용대가 기내에 사재폭탄을 터뜨리며 하이재킹을 시도하는 이야기입니다. 
 

6. 영화 하이재킹 관람 후기

 
하이재킹 영화는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했다는 자막과 함께 시작합니다.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를 알지 못해도 어쩐지 내용이 짐작되는 줄거리였지만 믿고 보는 배우들의 연기에 저는 스릴 있고(?) 박진감 넘치며(?) 재미있게 감상했습니다. 여진구 배우가 데뷔 20년 만에 맡은 첫 악역이라는 점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하이재킹 영화는 배경과 전투기 등의 모습을 CG로 구현했는데 흐린 눈으로 보면 사실감 있었고, 70년대의 사회적 배경(선착순 비행기 좌석, 대중교통에서 흡연 가능, 비행기 좌석에 재떨이 있음)을 보여주는 부분도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오픈 초기라서 자세한 후기를 남길 순 없지만 저는 근래에 봤던 영화 중에 가장 취향에 맞는 작품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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